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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2015. 2. 22. 16:40

[이자미카] 벌레

#수위조심






소노하라 앙리는 땀이 저의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부터 습기를 머금었던 공기는 그녀에게 한 줌의 시원함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여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묵묵히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그늘 아래에 서서 그녀의 친구를 기다렸다. 부신 눈을 찡그리며 교문 쪽만을 바라보았다. 혹여 연락이 왔을 때 받지 못할까 염려되어 손에는 휴대폰을 쥐었다.

소노하라 앙리에게 친구라고 불릴만한 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서로를 이용했던 전前 친구 하리마 미카,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 키다 마사오미, 그리고 지금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류가미네 미카도. 몇 되지 않으나 면면히 살펴보자면 요도를 몸에 품고 있는 그녀만큼이나 특이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차지하고야 마는 하리마 미카는 부모의 돈과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그녀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몸까지 아낌없이 내던졌다. 중학생이라는 몸이 아직 여물지도 않은 어린 나이에 폭력이라는 수단으로 이케부쿠로에서 한 세력을 일구어낸 키다 마사오미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하는 그릇을 가졌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류가미네 미카도는...

이용할만한 배경이 없었으면서도 처음부터 제 몸을 내 던졌고, 남의 도움과 거짓말로 세력을 일구어냈으면서도 그것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앙리 그녀처럼 자신을 지키고도 남을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덧붙여서 그의 육체적 능력은 일본의 평균적인 남고생 이하였으니까.

걱정되었다.


"아."


상념에 빠져있던 앙리의 귀에 괜스레 목덜미가 간지러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앵앵거리는 모깃소리였다. 무심결에 목덜미에 내려쳤던 손바닥에는 배가 터져 새빨간 피를 뿌린 모기 사체가 있었다. 땀이 흐르던 목덜미가 이 죽은 모기에게는 진수성찬처럼 보였을까. 제 피를 이렇게 보게 될 줄 몰랐다.

사랑을 외치는 사야카가 녹아있는 피는 어떤 맛이었을까. 적어도 마시면 죽는 독은 아니었나 보다.

앙리는 손바닥을 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층 여자 화장실 세면대로 향했다.


-


시끄럽다.

류가미네 미카도는 열에 들떠 둔해진 뇌로 생각했다. 주변이 소음으로 가득 찼다. 그의 얇고 낡아 방음이 되지 않는 벽은 옆방의 TV 소리를 통과시켰고, 더운 여름날이라 열어둔 창문으로는 찌릉거리는 매미 울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우는 것만큼 가깝게 들렸다. 쉴새 없이 울려 차마 화면을 확인할 엄두도 나지 않는 휴대폰은 그의 뻗은 손이 닿지 않는 방구석에 떨어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몸을 짓누르며 쉴 새 없이 떠드는 남자의 말이 너무나 시끄러웠다.


"미카도군."


미카도군 미카도군 미카도군. 자신의 이름이 웃기지도 않은 미카도帝人라는 것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왜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반복하는가. 헉헉거리는 더운 숨보다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제 이름이 불쾌했다.


"우리의 운명적이었던 두 번째 만남이 떠오르지 않아? 내가 왕자님처럼 미카도군을 구해줬는데!"


드디어 제 이름을 부르지 않더니 대신 헛소리가 나왔다. 이것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물론 그 날은 미카도 그도 똑똑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야기리 제약에 고용된 사람들이 이미 증발된 하리마 미카를 찾기 위해 저를 지금처럼 뒤에서부터 제압하여 방바닥에 처박았었지. 무엇보다도 이케부쿠로에 다라즈가 실존함을 증명한 날을 미카도가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지금 미카도를 깔아 뭉게는 남자는 전혀 왕자님 같지 않았다. 오히려 동화로 비유하자면 부당한 거래를 태연하게 제안하는 마녀와 닮아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말에 긍정하지 않는 소년이 얄미워졌다.

 
"구멍을 좀 더 조여봐."


그래서 새로운 대화 주제를 택하며 동시에 미카도의 빈약한 엉덩이를 손바닥로 내려쳤다. 철썩거리는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화끈거림에 저도 모르게 미카도는 엉덩이 쪽에 힘이 주었고 그제야 남자-오리하야 이자야는 말 대신 숨이 넘어가는 듯한 헐떡임을 뱉었다.

그래도 시끄러워.

미카도는 당장에라도 휴대폰 쪽으로 뻗던 손으로 저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성인 남성의 무게가 실려서 고정된 허리는 미카도가 방향을 바꿔 이자야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막았다.

오히려 미카도의 시도는 이자야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 뿐이었다.


"울만큼 좋은 거야? 응? 미카도군? 울만큼 내 좆에 박히는 게 좋은 거야? 남자아이인데? 응?"


무슨 개가 짖는 소리일까.


"남자 아이 주제에 박히면서 앙앙거리는 소리를 내다니. 타고난 암컷이네, 미카도 군은."


오리하라는 미카도가 수치심을 느끼며 괴로워하기를 바라며 그리 말했다. 여자처럼 높은 교성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엎드린 채 암캐처럼 박히고 있는 소년이 신음 비슷한 것을 내며 발기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효과가 있지 않았다.

오리하라 이자야는 등교하기 위해 낡은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던 남고생을 거짓말로 을러 다시 방으로 밀어 넣었고, 우월한 신체능력과 경험으로 제 아래에 뉘었다. 날붙이를 이용한 협박이 없었고 피 날만큼의 상처도 없었지만, 이 행위는 엄연히 강간으로 분류될만한 폭력이었다. 그리고 미카도는 그 사실을 피해자라는 가혹한 입장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차마 즐기며 웃을 비일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비일상은 비일상이었고. 그에게 비일상이란 자신조차 객관화하여 무시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보다는 그제서야 들리기 시작한 자신의 헐떡임이, 비 웅덩이를 힘껏 밟는 것처럼 질척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짝을 찾는 매미 울음보다도 더 신경에 거슬렸다.

'가뜩이나 시끄러운데 더 시끄러워졌어.'

소음에 소음이 더해져 미카도는 짜증스러웠다.


"사랑해. 미카도군."


그 모습에 오리하라 이자야는 더 발정하여 허리를 놀렸다. 역시 이 아이는 기대 이상이다.


-


"소노하라씨."


앙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부르는 제 이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비친 세면대 얼굴에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그는 차마 여자 화장실 문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그 경계에 난감한 얼굴로 서 있었다.


"미카도군."


젖은 손을 닦지도 않고 그녀는 서둘러 미카도에게 다가섰다. 안경 너머의 눈이 그에게서 폭력의 흔적을 찾기위해 바삐 움직였다.

미카도는 한껏 미안한 얼굴로 지금껏 걱정해준 앙리에게 사과했다. 이자야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그저 아침에 갑자기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고 운을 띄웠다. 도저히 연락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고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바로 전에야 소노하라씨가 걸어준 부재중 전화와 답장을 하지 못한 메일들을 발견했지만, 그보다는 급하게 학교로 가는 것이 먼저였다고 말했다. 
  
동안에 순진하게 생긴 그의 얼굴이 구체적이지 않은 변명에 진정성을 부여했다.


"큰일이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고마워."


가만히 그 변명을 듣고 있던 앙리가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미카도는 다다미에 쓸려 까진 무릎과 돌아가는 길에 파스를 사서 바를 예정인 허리, 화끈거리는 엉덩이, 아직도 벌어진 것 같은 항문에도 불구하고 슬쩍 미소까지 지었다.

앙리는 평소처럼 그를 따라서 입꼬리를 올리지 않았다. 옷에 가려진 부분에서 큰 상처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셔츠 깃으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지는 그의 목덜미 부근이 유난히 붉었다.


"...목의 상처가 어쩌다가 생겼는지 여쭤보아도 될까요?" 


미카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모기에 물렸어."


앙리는 미카도가 걱정되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이라도 베어 그를 보호하고 싶어졌다. 자신의 아이로 만들고 싶었다.


"소노하라씨도 물렸네?"
"여름이니까요."


하지만 끝까지 미소 짓는 모습에,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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