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thymetime

Rss feed Tistory
Text 2015. 2. 22. 16:28

[마나오노] 살인


오노다 사카미치는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가느다란 섬유 와이어가 장갑을 무시하고 손바닥 안을 파고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직 필사적으로 자신의 목을 죄는 여자에게서는 생명의 발버둥이 느껴졌다. 기도가 졸린 상태에서 만들어내는 들을 수 없는 단말마였다. 그는 이 순간이 싫었다.



"미안해요."



그러나 그것도 곧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이 느껴지던 수십 초가 흐른 뒤에 여자의 몸은 조금 전까지 문자 그대로 필사적으로 움직이던 생명을 잃었다. 뇌가 죽어버린 것이다. 얇은 실은 공기를 폐로 보내는 것을 막았지만, 그보다는 폐에서 걸러진 산소를 뇌로 전달하는 핏줄을 막았다. 어느 쪽이나 여자가 느낀 고통과 공포가 대단할 것임을 오노다는 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죽인 여자에게 사과하였다.


시야가 흐려졌다. 커다란 눈에 고인 눈물로 안경알이 흐려진 것이다. 주책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살해 현장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을 남기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오노다는 어깨를 들어올려 눈물을 찍어 닦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수한 색의 트레이닝복은 금방 수분을 흡수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목을 감았던 와이어를 풀자 시체는 금방 더러운 골목길에 떨어졌다. 아이보리색의 정장에 묻은 때는 쉬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신경쓸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노다는 살해도구를 신중히 왼손에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장갑을 뒤집어 벗으며 갈무리했다. 마찬가지로 벗은 오른손 장갑과 함께 지퍼가 달린 트레이닝복 주머니 안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나이도 이름도 얼굴조차 모르는 여자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사과한 그는 보안 카메라조차 고장 난 골목을 나왔다. 그 일련의 동작들에는 어떤 머뭇거림도 없었다.


오노다는 이제 죽어버린 여자의 나이도 이름도, 얼굴도, 키도, 몸무게도, 직업도, 생활반경도, 심지어 은밀한 취미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어떠한 원한도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천하의 몹쓸 년으로 몰아갈 면까지 알면서도 어떠한 분노도 일지 않았다. 다만 그 여자를 죽이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을 뿐이다. 직업을 가져야 할 나이가 된 오노다는 그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고. 그것이 살인이었다. 누군가를 이기거나 전쟁 영웅이 되는 것에는 재주가 없었지만, 사람을 몰래 죽이는 것만은 잘하였다.


평생 자신이 잘하는 무언가를 원했던 오노다가 암살자라는 직업을 가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며 떳떳할 수 없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



마나미 산가쿠는 나이프를 폐에 좀 더 깊게 박아 넣으며 입맛을 다셨다. 타인과 자신을 연결하는 나이프를 잡은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박동은 흥분을 가져왔고 그 흥분은 입 속 침을 마르게 했다. 그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떠드는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어지간히 원한이 쌓였던 듯 이미 알고 있는 답을 구하는 듯한 질문이 많았다. 하지만 마나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쓸모없는 소음이었다.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은 이런 생생한 목소리가 아니다. 그는 순간적인 충동으로 그의 목젖을 노렸다. 보통이라면 필요 이상으로 피가 많이 튀어 꺼리는 부분이지만, 방금 전에 느꼈던 떨림은 귀찮음도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었다. 자신의 목에 칼을 박아 넣은 남자를 바라보는 홉뜬 눈을 마주치며, 그는 웃었다. 



"이제 조용하네."



세상이 조용해지고, 비로소 그가 듣고 싶은 소리가 들린다. 혈압에 의해서 피부 밖으로 넘치는 피의 흐름, 마지막 숨을 뱉기 위해 뒤틀리는 폐의 헐떡임, 최후의 유언이 될 의미 없는 단말마,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절대로 만들 수 없는 고요한 정적.


마나미가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꿈틀거리는 자신의 심장박동과 헐떡이는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그곳에는 죽인 사람과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인간과 죽은 인간이 있었다. 


삶과 죽음의 극명한 대립 속에서 마나미는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살아있다.


눈을 감고 그 순간의 여운을 즐기던 마나미는 돌연을 눈을 떴다. 나이프를 가져온 비닐로 둘둘 감아 챙겨두고, 피투성이 장갑을 앞니로 물어 벗었다. 입안에서 약한 쇠맛이 느껴졌다. 장갑과 나이프까지 가방에 잘 챙겨 넣은 다음 마찬가지로 피가 튄 겉옷을 뒤집어 입었다. 살림에는 재주가 없는 그는 이 핏자국을 지울 수 없을 것이고, 이런 물건을 세탁소에 맡길 수도 없으니 아마 장갑과 함께 태워야 할 것이다. 


자리를 뜰 모든 채비를 끝낸 그는 마지막으로 죽을 때까지 그를 원망한 남자를 향해 멋쩍은 듯 변명했다.



"어쩔 수 없었어."



그에겐 어떠한 원한도 없다. 오히려 지금은, 그가 의도한 것은 절대 아니겠지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것에 대한 약간의 고마움까지 느꼈다. 그것으로 그를 살릴 수는 없겠지만, 마나미는 진심이었다.


그러니 그를 죽인 것은, 아니 어떤 특정한 인간에 한정할 필요없이, '살인'을 하는 것은 마나미에게 어쩔 수 없었다.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삶은 죽은 것과 매한가지다. 마나미는 오직 살인을 통해서만 그가 살아있음을 느꼈고, 지극히 생을 갈구하는 그의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욕구는 그를 살인의 길로 내몰았다.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률도, 살인자라는 주홍글씨도, 역으로 살해당할 수 있다는 위험도 그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는 발걸음으로 마나미는 그의 성소(聖所)를 벗어났다.



'Tex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마츠나] 危  (0) 2015.02.22
[야마츠나] 자살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모자란  (0) 2015.02.22
[앙리미카] 자애  (0) 2015.02.22
[사사나가] 하늘  (0) 2015.02.22
[모래나가] 악당  (0) 2015.02.22
,
TOTAL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