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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2015. 2. 22. 16:34

[앙리미카] 자애

 


전쟁은 끝났다.


 


류가미네 미카도는 그 끝난 전쟁에 참전했었다. 일본의 고등학생으로 소년병으로 불러도 좋은 나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 전쟁에서 한 무리의 병사를 이끌었다. 전쟁에 참여한 이들 중에서도 지나치게 약한 그가 총수가 되어 전쟁에 참가한 것은 여느 역사 속 전쟁처럼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다. 거창한 대의명분에 의하여 그가 소속된 집단에 봉사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심지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 전쟁이 그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옥상 난간에 앉아 전쟁터를 내려 다 보았다. 허무한 무력과 무력이 부딪히고 어린아이의 치기와 어른의 욕망이 만난 공간이다. 딱딱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배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곧 사라질 흔적은 그 배경 위에 존재했다. 그 흔적은 미카도가 전쟁을 더듬기에는 충분했다.


 


류가미네 미카도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는 웃지 못하였다.


 


보편적인 인간의 상황 판단 능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였다. 그 만큼 웃음도 많았다. 길을 가다 흘려들은 농담에도 작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인간이 류가미네 미카도이다. 하지만 지금, 살아남았음에도 그의 입술은 한 일자로 다물려 좀처럼 휘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에 웃었던 남자가 선포하며 명명한 ‘전쟁’은 평범한 일본의 고등학생이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경험이었다. 폭력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놀랄 규모의 무엇인 그 속에 있었음에도 미카도는 그의 충복인 쿠로누마 아오바가 사랑한 미소를 짓지 못하였다.


 


그 답지 않게 호승심이라도 들은 걸지도 모른다. 이 전쟁은 죽은 자가 승자이다. 이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이미 웃으며 여자의 목을 끌어안으며 죽었다. 그러므로 살아남은 미카도는 패자이다.


 


그러나 그는 울지 않았다.


 


십 미터가 넘는 공기층을 밟고 있는 그의 발은 이미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달랑거리는 발을 바라보는 눈의 한쪽은 이마가 깨지며 흐른 피가 흘러 들어가 제대로 뜨지도 못하였다. 난간위에서 몸을 지탱하는 손바닥은 잘 갈려져 모래가 박혀있었다. 육체적 고통에 익숙하지 못한 그가 견디기 힘든 아픔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울지 않았다.


 


그가 위태롭게 앉아있는 좁은 난간위로 친우이자 전우이며 적이었던 소노하라 앙리가 가뿐히 뛰어 올라섰다. 작은 몸을 가볍게 놀리는 그 모습에 온 몸에 낭자된 자상이 아니라면 기계체조 선수라 소개해도 납득 할 수 있을 것이다.


 


앙리는 미카도를 향하여 걸어왔다. 미카도와 같은 쪽의 안경알은 이미 깊게 금이 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고집스럽게 그 안경을 쓰고 아무렇지도 않게 좁은 길을 걸었다. 마침내 난간을 짚은 미카도의 왼손 옆에 앙리의 오른발이 놓였다.


 


그녀도 살아남았다.


 


언제나 자신의 표정을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미카도는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앙리의 표정이 궁금했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할까? 사야카가 아닌 소노하라상의 얼굴에 그 감정이 새겨져 있을까? 그가 알고 있는 모든 낱말이 섞여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짓눌린 미카도는 비겁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녀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면, 그의 감정도 억지로나마 정의 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노하라상.”


 


 


미카도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피가 말라 붙은 다리가 보이고 다 찢어져 맨살이 드러난 후드 티가 보였다. 미카도는 소노하라의 얼굴을 보기위해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붉은 빛이 도는 것처럼 보이는 눈과 마주쳤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앙리는 전쟁터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미카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물이 안경에 떨어져 산란하는 빛 무리를 만들어 내는 도중에도 그녀는 계속 눈물을 떨어뜨렸다. 미카도가 눈치 챌만한 작은 신음 하나 없이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류가미네군.”


 


 


사야카가 아닌 소노하라 앙리가 미카도가 원하던 깊고 맹목적인 감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앙리의 목소리는 안도로 가득 차 있었다.


 


살아남아서 다행인 것이 아니다. 사는 것이 다행이 아니라 죽지 않았기에 다행인 것이다. 그녀의 감정은 남아있는 친우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정이었다.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소중한 것, 그것은 결코 미카도가 원하던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었지만 그만큼 깊었다.


 


아니, 남녀간의 사랑이 무엇인가. 기괴하고 비틀린 거리에서 가장 정상적인 사랑은 목이 없는 요정과 그녀를 해부한 의사의 사랑이다.


 


어느새 미카도의 감정은 앙리의 것과 닮아있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전쟁터에서 겨우 발견한 것이다. 미카도는 몸을 돌려 아슬아슬하게 앉아있던 자세를 고쳤다. 발판 없는 곳에서 덜렁거리던 발 중 한쪽이 옥상의 바닥을 밟으며 그의 몸은 확실하게 고정되었다. 발목은 시큰 거렸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팔을 뻗어 앙리의 손을 잡았다. 양쪽 모두 단단히 잡아당기는 그의 행동에 앙리는 난간에 무릎을 꿇었다. 미카도에게 앙리는 유혹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한 미련도 잊으며 그녀만 본다면 분명 편할 것이다.


 


성실하게 몸에 익힌 가치관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러한 가치관을 따라 행동하는 무리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이다. 비일상을 동경하며 살아온 그이며 비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곳에서 의지할 곳이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그녀가 그의 행동의 기준이 된다면 류가미네 미카도는 웃거나 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소노하라상. 부탁이야. 언제나처럼 내 곁에 있어 줘.”


 


 


머릿속에서 그러한 알고리즘을 연산하기도 전에 미카도는 이해했다. 본능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그는 자신을 동정하는 앙리에게 매달렸다.


 


 


“응.”


 


 


앙리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리어 미카도를 품에 안고 팔 안에 가두었다. 그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그를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드러난 젖가슴이 미카도의 머리에 닿았다. 하지만 미카도는 흥분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안심했다.


 


그렇게 류가미네 미카도와 소노하라 앙리는 서로에게 매달려 한참 동안 부둥켜안고 있었다. 미묘하게 다른 두 사람의 체온이 같아질 무렵에 미카도는 문득 팔을 풀고 떨어졌다. 두 사람은 같은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날 베어도 좋아.”


 


 


그것은 류가미네 미카도의 청혼이었다. 결혼이라는 형식은 아니었지만 상대와 영원히, 언제까지나 함께하고 싶은 것을 고백한다는 맥락에서 청혼과 닮아있었다. 앙리의 어딘가에서 사야카가 외쳤다. 사랑한다고, 그리고 눈앞의 인간을 사랑하라고. 그래서 앙리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해.”


 


 


소노하라 앙리는 언제나 몸속에서 울리던 말을 내 뱉었다. 그러나 그녀는 눈앞의 인간을 베지 않았다. 온전한 그녀의 마음이었다.


 


마주보는 미카도와 앙리의 눈에 미래가 흔들리며 지나갔다. 그들은 언제나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쇠붙이의 사랑에 몸이 녹슬고 많은 아이를 가진 소노하라 앙리에게 성욕은 존재하지 않는다. 친우와 적에게 보내는 감정까지 긁어모아 앙리에게 집중하는 류가미네 미카도가 그러한 상대를 그러한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을 리 없다. 그들은 언제나 함께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것이다. 타인에게는 연인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상관없다. 마사오미가 그들을 떠났을 때부터 자신들이 그러한 사이였다는 것을 지금의 류가미네 미카도와 소노하라 앙리도, 그리고 미래의 두 사람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전쟁이 끝난 날, 상처투성이의 그들은 함께 잠이 들었다.


 


일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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